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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눈풍경 흔하지 않아산책 2024. 11. 28. 16:24
눈이 많이 왔다. 첫눈 치고는 폭설이다. 우리 동네 담장에 소나무가 기울어져 있다.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눈이 많이 와서 오늘 걸을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습관은 버릴 수가 없다. 차들이 다닌 곳엔 길이 나 있다. 도로가 드러나 있다.
나는 오늘 내가 평소 가던 길 반대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넓은 길로 가는 것이다. 차들이 다닌길은 눈이 녹아 있다. 차가 차치치 치~ 소리를 내며 간다.
내가 이 길을 가는 이유는 눈이 많이 와서이다. 좁은 길은 아무래도 눈이 덜 녹았겠지.
눈덩어리와 물덩어리가 툭툭 내 점퍼를 때린다. 갑자기 소나무에서 눈이 떨어진다.
사람들의 발자국이 많이 나 있다. 가버린 발자국이지만 기온이 그리 낮지 않으니
눈이 없고 녹은 눈덩이인 것이다. 갑자기 내 목덜미로 눈덩이가 떨어진다.
길이 막혔다 담장을 넘어야겠다. 소나무가 부러져서 길을 막고 있었다. 숲 속은 더하다.
소나무 한그루에 두 개의 가지가 부러져서 길을 막고 있었다. 우와 대단하다.
나는 길을 가기 위해 담장을 두 번 넘어야 했다. 다리를 들고 쇠 담장을 넘는다.
와~ 대단하다. 나무 가지가 이렇게 많이 부러져 떨어지다니. 이런 광경은 처음이야.
나는 나무를 피해 올라간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아니라 나무에서 떨어지는 비다. 눈이다.
소나무는 완전히 부러졌다. 완전히 길을 막았다. 몸을 숙여 밑으로 빠져나가야 될 거 같은 데
가까이 가보니 다행히 작은 틈이 나 있다. 눈 덩어리, 바위 같은 덩어리가 툭툭 앞에서 떨어진다.
맞을 수도 있겠다. 이건 자연의 이변이다.
저 앞에 숲 여기저기에 소나무가 휘거나 부러져 있다. 오늘 내가 나오지 않았다면,
눈이 많이 와서 그냥 집에만 있었다면 이런 광경을 보지 못했을 거다.
갑자기 머리 위로 눈 덩어리가 떨어졌다. 놀랬다.
이제 참나무가 보인다. 가을까지 따뜻하더니 단풍과 눈을 같이 볼 수 있다.
파란 나무 그리고 눈 풍경. 이것은 어디 풍경인가?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풍경이다.
단풍과 하얀 눈과 소나무, 소나무 위에 쌓여있는 눈덩어리 그리고 햇살. 아침에 나와 보길 잘했다.
한 남자와 두 여자들이 내려오는데 옷차림은 겨울이요, 아이젠까지 꼈다.
소나무가 약한가? 눈이 많이 쌓여서 그런 거야. 그 무게를 참을 수가 없었던 거야.
그러나 참나무는 이미 낙엽이 다 떨어져서 눈이 쌓이지 않았지. 부러진 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내가 올라왔던 조그만 오솔길 경치가 너무 좋다. 길옆에 참나무들은 아름답다.
앞을 보니 거기도 소나무가 있다. 굵은 가지가 떨어져 있다. 다시 한번 놀란다.
앞으로 가기가 그리 쉽지 않다. 나는 뒤돌아서 다른 길로 간다. 샛길이 있다.
눈덩어리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조금 일찍 갔다면 맞을 뻔했다.
오늘은 걸어가기가 쉽지 않은 날이다. 소나무 장애물이 많은 길이다. 미끄러지기까지 한다.
올라가야 할까? 그래도 가봐야지. 겨우 올라왔다. 숨이 차다. 신발이 빠진다.
역시 작은 길은 사람이 안 다니기 때문에 눈이 많이 쌓여서 그렇다.
이 길이 아닌데. 난 다시 원래 등산길로 나왔다. 조심해야 돼… 신발이 푹푹 빠진다.
오늘 아침 고난의 길이다. 가는 길이 험난하다. 미끄러진다. 넘어질 뻔했다.
습한 눈길을 가니 무릎이 약간 아프다. 이런 경험을 언제 하냐.
계속해서 나무에서 눈이 내리고 비가 내린다. 눈을 맞은 참나무 가지들이 흔들린다. 자연의 소리다.
예전에 여름엔 태풍 때문에 많은 나무들이 뿌리째 뽑아 버렸는데 이 겨울엔 눈으로
나무가 부러지고 뿌리가 뽑힌다. 엄청난 거야.
이 작은 산에서도 이렇게 큰 변화를 보는데 북극과 남극, 열대 우림과 사막은….?
우리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연의 변화를 상상해 보라. 감히 세상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지 마라.
눈덩이가 내 머리를 친다. 정신이 번쩍 난다. 나는 이제 약간 경사진 곳을 빨리 내려간다. 아무도 없다.
젊은 시절의 나를 본다. 젊은 시절의 설악산을 생각해 본다.
동기와 선배와 장난하며 다녔던 설악이 지금 여기와 다르지 않다.
눈 폭탄을 맞으며 쓰러진 나무를 보며 걷고 있다.
아니, 그런데 나무가 뿌리째 쓰러져 있다. 무슨 나무인가?
가만히 보니 신갈나무 같다. 참나무도 하나 쓰러져 있다.
작은 계단을 내려가 가는데 쓰러진 나뭇가지가 내 안경을 쳤다. 안경을 찾느라 한참을 헤맸다.
그 사이에 어떤 남녀가 같이 오는데 나뭇가지 사이를 넘어가는데 힘들어하길래 내가 나무를 밟아줬다.
난 다시 삼거리까지 와서 우측으로 올라간다. 큰길로 나가는 길목이다. 오늘은 정말 천천히 걷는다.
걷는 것보다는 눈구경, 산구경, 길 구경, 눈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나오길 잘했어.
지금 집에 있다면 이런 광경을 어떻게 볼 수 있나? 자연은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선물을 선사한다.
눈덩어리와 파란 하늘, 바람. 나는 노란색 붉은색 갈색 단풍이 눈에 묻어있는 참나무를 한 장 찍는다.
이런 관경은 흔하지 않다. 나는 계단이 미끄러울 것 같아서 옆에 눈 쌓인 길로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은 더 위험한 것 같다. 미끄러지니까 말이다. 그래도 가야지.
풍경, 풍경, 눈 내린 풍경.
이제 나무에서 내리는 눈이 그치고, 맑은 햇살 아래서 눈이 녹는다.
툭툭 물이 되어 떨어지고 눈덩이가 떨어진다.
그리고 작은 눈보라가 흣날린다. 터벅터벅 걷는다.
또 하나의 소나무가 꺾어져 있다. 부러진 거 같다. 뿌리 쪽이 부러진 것 같다. 얼마나 아플까.
잠을 잘 자게 해주는 소나무들, 소나무 향기 그 아름다운 향기, 그 향기가 부러지고 쓰러졌다.
조심해야겠다. 자꾸 미끄러진다. 눈이 녹고 있다.
눈이 쌓인 곳으로 걸어가야겠다. 하산길은 더 힘들다. 미끄러지기 때문이다. 이런 때 스틱이 필요하다.
그런데 왜 오늘 안 가지고 나왔을까? 평소처럼 상상했기 때문이야. 진실은 달라. 현실은 달라.
현실에 부딪혔을 때 진실을 말할 수가 있어. 더 큰 상상력을 키울 수 있어. 자꾸 넘어지려고 한다.
조심해서 가야지. 이제 거의 다 내려왔어. 눈앞에 집중해.
한순간에 방심이 너를 다치게 할 수 있어. 내려가는 길은 미끄럽다.
하산길에서도 소나무가 쓰러져 있다.
그 앞 야채 가게 쪽으로 쓰러졌다. 천막 반 쪽이 소나무에 눌려서 부숴 졌다.
할아버지, 할머니 담소 장소인데….
내려오는데 어느 아주머니 나에게 물어보면다.
“저 산속은 미끄러운 가요?”
“네 미끄러워요. 조심하셔야 돼요. 나무도 많이 쓰러져 있고... 아이젠 하는 게 좋죠.
스틱도 잘 가져오셨네요.”
이제 막 눈이 녹는다.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자꾸 미끄러워 진다.
예상치 못한 눈에 소나무들의 상처가 안타깝다.
하산하고 나니 해가 반짝 웃는다. 맑고 파란 하늘과 흰구름이 보인다.
산뜻한 아침이다. 눈과 가을과 상록수가 공존하는 산길 속에서 새로운 풍경을 보고 왔다.
흔하지 않은 새로운 변화를 만나고 돌아왔다.반응형'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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