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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고 돌아 제자리로 간다
    산책 2024. 11. 25. 14:01

    오늘은 오후 다. 아침 일찍 교회를 갔다가 학생들 가르치고 걸을 수 있는 시간이 오후가 돼야 되었다.
    오늘 하루에 산책을 빼먹지 말자. 오늘은 그래도 바람이 없어 저녁 시간에도 포근한 기온이다.
    아파트 담장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어떤 남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 담배 냄새가 내 앞으로 확 풍기는데 옛날 생각이 난다. 젊었던 시절, 화랑 담배 피우며 단 맛을 느끼던 시절, 그땐 군대 시절이었지. 그 젊은 시절 군 철모 아래로 비가 뚝뚝 떨어질 때 필터 없는 화랑담배를 피우던 그 시절. 니코틴 단맛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걷고 또 걷고 총을 메고 배낭을 짊어지고 그 시절 전우와 함께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다가 어느 주막집에 들러 막걸리를 한잔하고 비를 맞으며 걸어갔지.
    목적지를 향해 우리는 한팀이 되어 걸었지.
    아 인생은 모를 일이야.
    그러던 내가 그때 의 두 배 아니 세배를 살다 보니 다리힘도 빠지고 허리 힘도 빠지고 걸음걸이도 느려졌겠지.
    저 앞에 가는 젊은이 그대 씩씩하게 걷고 있군.
    갑자기 저 언덕 위에서  산악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는 남자가 있었다. 깜짝이야!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데 난 놀랬다. 저 친구 스피드는 아무 문제없다는 듯 달려 내려오는 거야. 잠시 내려가는 그를 쳐다보았다. 젊음이 좋긴 좋군.

    어두워지는  저녁에 산책길은  아침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아침에 일어나는 해는, 우리를 생기 있게 해 주지만 저녁의 해는 우리를  차분하게 해 준다.
    오늘 나의 바위를 보러 반환점으로 간다. 가는 길에 낙엽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점점 검은색을 띠는 나무 기둥들. 겨울은 다가오고 우리 외투는 두꺼워진다.
    나무 사이로 건너편에 걷고 있는 사람들과 산등성이가 점점 잘 보인다. 군 시절 북한지역의 병사들을 보던 생각이 난다.
    여름이라면 가릴 수 있었지만 겨울이 되면  먹을 것을 나르고 운동을 하고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

    그때 군 시절 잘 걸었지. 밤이 되면 인가에 들어가서 밥도 얻어먹었지. 캄캄한 곳에서 촛불을 키워 놓고 밥을 먹던 그 시절. 그 농민들 너무나 인심이 좋아 우리 배를 따뜻하게 해 주었지. 삶은 이렇게 가는구나 인간은 오래 사는구나.
    오래 살면서도 짧은 것이  인간의 삶이다.

    산에 나무들이 울긋불긋 노을이 서서히 그림자로 가려지는데 난 다시 바위 앞에서 나의 역사를 바라본다.
    진달래는 거의 붉은빛을 잃어버리고 말라 가고 있다. 이제 이것도 낙엽으로 떨어진다.
    상수리나뭇잎들의  반이상은 나무에서 떨어졌다.
    오늘도 아침에 못한 산책을 저녁에 이루어 낸다. 나의 다리, 나의 허리요. 충직한 나의 다리여.
    지금도 이렇게 걸을 수 있다니 너무 감사하지 아니한가.

    아들의 발표가 오늘도 이루어진다. 아들아 꼬리가 되지 말고 머리가 되고, 받지 말고 주며, 세상의 리더가 돼라.
    사랑을 창조하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라. 오직 그것만이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기도의 제목이다. 사랑한다.
    오늘도 힘내라. 오늘도 감동의 메시지를 세상에 뿌려라.
    난 올라간다. 세상에 사랑을 모두 간직한채 언덕을 올라간다. 나의 다리는 하루도 정지할 수 없다.
    나이가 먹을수록 근육이 풀어져 간다. 움직이지 않으면 멈춰진다. 난 간다, 계속 간다.
    하늘을 향해 땅을 향해 나무숲을 향해 낙엽을 밟으며 올라간다.
    앞에 가는 저 사람  혼자다.  말이 없다. 모두들 조용히 자기 세상에 충실하고 있다. 나도 조용히 걸어간다.
    젊은 시절 화랑담배 물고 걸었던 그 시절을 기억하며 걷는 산책 길이다

    갑자기 막걸리 생각이 난다. 가을 좀 쌀쌀하네… 막걸리가 좋지.
    여름엔 맥주가 들이켜고 싶지만 가을에 어울리는 술은 막걸리다. 막걸리 하나 사야겠다.
    식사 전에 한두 잔 마시면 밥맛도 좋겠지. 그리고 보니 군 시절 훈련받던 시절,
    전우들과 주막집에서 먹던 술이 막걸리다.  이제는 모두가 노인들이 되어 저벅저벅 산길에 산책 길에 나서겠지.
    육체의 변함, 그걸 누가 막을 수 있으리. 거기에 맞게 우리 형편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 어떤 이야기도 우리를 속이지 못한다. 진실 만이 남게 되는 것. 진실만을 말하라.
    너의 산책 길에서 머리에 떠오르는 기억 속에서, 그 회상 속에서 오로지 진지한 감동만을 써라.
    그리고 받아들여라 현재를. 현재를 즐겨라. 나의 모습을 기억하고 그것이 지금 인양 현재를 즐겨라.
    담배가 내 옆에 있는 양 그것을 지금 즐겨라. 그 기억을 즐겨라. 그리고 현재 삶을 즐겨라.

    지금 네가 엄청난 것을 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지금 나는 자그마한 벌레에 지나지 않는다.
    그저 다리가 몇 개 잘린 곤충처럼 삐거덕 거리며 걷고 있는 것이다. 숲 속 나무 아래 저 벌레들을 보라.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아도 부러진 다리를 가지고 걸어갈 수 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다리가 다 잘려 나가 땅속에 박히더라도 나무뿌리 속에 박혀 나뭇잎이 되어 세상을 밝게 빛나게 할 것이다.
    삐삐삐, 지지지이… 새는 뭔가를 찾고 있다. 내가 담배 연기 속에서 기억을 찾아내 듯  이 저녁에 뭔가를 찾고있다.
    하나의 기억을, 하나의 세상을, 하나의 느낌을 사랑하고 있다.
    오늘은 팔자 모양으로 걸었다. 팔자를 옆으로 누이면 무한대가 된다. 무한궤도를 달리고 있는 것이다.
    돌고 돌고 돌아서 제자리로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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