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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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시 2024. 1. 26. 11:47
개는 네발로 걷는다 인간은 두 발로 걷지 그래서 개는 허리병이 없어 무릎 관절병은 어떨까? 인간은 두 발로 몸을 지탱하나 개는 네발로 하잖아 그러니 무릎 관절도 사람보다 더 튼튼할 거야 그런데 왜 개는 인간보다 수명이 짧은 거야? 그래도 개의 다리는 부러워 네발로 몸을 지탱하니 몸이 가벼울 거야, 그래서 잘 뛰고 점프도 잘하잖아 그게 부럽지 우리가 못하는 거 그걸 해 주잖아 코가 촉촉하고 귀가 밝아 우리를 보호해 주잖아 개가 우리처럼 좀 더 긴 수명을 가지면 좋겠어 우리가 사는 동안 같이 살 수 있게 말이야 그래도 개야 너는 허리와 무릎이 안 아파서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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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무시 2024. 1. 3. 20:07
하얀 옷을 입은 나무는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거야 여름에 그렇게 찬란했던 녹색 나뭇잎을 다 벗어버리고 가지만 보이고 있지만 회색빛 하늘로 가지를 뻗친 채 겨울을 이기는 나무의 꽃망울은 얼지 않아 절대 얼지 않아 겨울나무는 벌써부터 살아가야 할 준비를 하고 있었어 나는 알고 있지, 조금 있으면 나무는 추운 겨울을 이기고 푸르른 나뭇잎을 활짝 피우기 위해 아무리 추워도 끄떡없는 외투를 입고 있었던 거야 세찬 바람이 불어와도 빈틈없이 막아낼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던 거야 내일은 산에 올라야지 세찬바람, 추위 속에서 눈보라 속에서 꿋꿋이 서있는 당찬 너의 모습을 보러 가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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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내리는 비시 2023. 11. 16. 09:55
눈을 뜨니 비가 옵니다 건조한 영혼의 땅에 물을 주옵소서 우리를 깨끗한 물이 충만한 영혼의 강으로 데려가 흠뻑 잠기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이의 머리에 촉촉이 내리는 비 누구에겐 생명의 비 또 누구에겐 슬픔의 비이지만 지금 나에겐 침묵의 비이고 소망의 비이고 내일을 향한 속죄의 눈물입니다 그 눈물을 보니 나도 눈물이 납니다 인생의 고락은 이 비속에서 모두 녹아내립니다 오직 우리의 영혼만이 비속에서 깨끗해집니다 모든 더러운 먼지를 씻어냅니다 회색빛 하늘 아래 머리 숙여 기도하게 합니다 비가 오는 아침, 비를 맞으면 생각나는 하늘, 그 하늘은 우주의 아름다운 꽃입니다 그 비는 우리를 향해 뿌려지는 꽃잎들입니다 꽃에서 결별해야 하는 꽃잎들입니다 흐트러져, 결별 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아름다운 우리의 눈물입니다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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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향기 속의 추억시 2023. 11. 11. 17:32
바람 한점 없는 조용한 저녁 솔향기 나는 오솔길을 걸으면 오래된 추억이 떠오른다 어릴적 그리운 고향 보자기 가방 메고 하교 하던 때 어머니가 빨래하던 우물가와 아버지가 사냥하여 얻은 참새와 비둘기가 떠오른다 한겨울 사과 궤짝으로 만든 썰매를 지치며 논위 얼음판에서 놀던 그 시절 산기슭 맨 끝집 문 열고 들어가면 보이던 마루와 부엌 겨울 아침 새벽 어궁이에서 새를 구워 주시던 아버지 밀가루 반죽과 멸치 국물로 수제비를 끓여주시던 어머니 이젠 그 추억이 사랑으로 幻生되어 솔향기와 함께 나의 뇌리를 스쳐간다 아버지의 사랑 어머니의 사랑 내맘속에 사무치고 있다 나도 나의 아이들에게 이런 추억을 남겨 주어야지 내가 부모님의 사랑을 느끼듯 애들도 사랑을 느끼도록 사랑해 주어야지 애들도 애들의 아이들이 사랑을 느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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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나는 나이를 먹고 있다시 2023. 11. 4. 18:30
가을이 되면 나무들도 우리처럼 머리가 희어져 간다 노란색, 갈색으로 나무들도 우리처럼 머리카락이 빠진다 하나, 둘 떨어진다 나무들도 우리처럼 머리숱이 적어진다 나목이 되어간다 그리하여 겨울이 오면 나무들은 벌거숭이가 된다 우리들은 두꺼운 외투를 입고 추위를 막는데 나무들은 외투도 없이 추운 겨울을 맞는다 그러나 나무들에겐 비밀이 있다 우리가 외투를 입을때 나무는 내피를 입는다 우리가 외피를 입고 나이를 먹을때 나무는 내피를 입고 나이테를 만든다 나무와 우리는 반대로 산다 봄이 되면 나무는 옷을 입기 시작하고 우리는 벗는다 가을이 오면 나무는 옷을 벗기 시작하고 우린 입는다 나무는 속으로 나이를 먹고 우린 겉으로 나이를 먹는다 나무는 움직임이 없다지만 조금은 움직인다 우린 많이 움직인다지만 우주에서 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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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시 2023. 10. 28. 16:40
지금은 가을이지만 우린 지난날 아름다운 신록을 보았다. 더 많은 신록을 보았다. 우리는 즐거운 날보다는 근심과 걱정, 스트레스와 고뇌, 부족한 것과 불만족스러운 것들을 채우려는 욕망과 근원적인 몸부림으로 살아왔다. 본래부터 갖고 있었던 자유로움으로부터 우리는 억제당하고 제어받으며 살아왔다. 삶의 구렁텅이에서 발버둥 치며 살기 위해 노력했으나 우리에게 안겨진 건 그리 많지 않다. 물질적인 욕망이 앞서는 우리에게는 물질적인 부족으로 인해 정신적인것 까지도 작게만 느껴지고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우리는 가진것들을 보존하지 못하고 다치고 병들며 아파간다. 보존한다고 해도 우리의 늙음은 피할 수 없는 죄과가 아닌가.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기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