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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스틱을 잡고 나섰다. 아침온도가 영하는 아니지만, 언덕을 오르려면
무릎이 무리가 갈 것 같아서 스틱을 잡기로 했다. 며칠 만에 와 보는 나의 산행길이냐.
그것이 궁금했다. 나의 산책길은 이제 낙엽은 거의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다.
오랜만에 가보는 길인데 내가 자주 다니던 길. 사진은 많이 찍어 봤지만 안 그려 볼 수는 없지.
난 큰 스케치북을 갖고 나왔다. 나의 정든 산책길을 기억에 담아두고 싶어서이다.
아 그때 푸르름과 단풍이 우거질 때 그때는 사진을 찍었지. 나는 나의 바위 위에 올라섰다.
큰 참나무 옆에 스틱을 세워놓고 그림을 그려 볼까?
연필과 스케치북을 나의 가방에서 찾는다. 그래도 어제보다는 바람이 없다.
저쪽 남쪽 산등성이에는 따스한 햇살이 비치고 있고 내가 있는 것은 약간 북쪽이다.
그래도 산이 낮아 햇살은 비친다.
한참 동안 그림을 그리고 나니 귀와 머리가 시리다. 나는 간단히 스케치를 하고 움직인다.
다시 아래로 내려간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나무 기둥 사이로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이 몸속으로 파고든다.
냉기가 파고든다. 난 걷기 시작했다.
내가 다니던 반대편 오솔길로 가기로 했다. 이곳은 반대쪽 남쪽이다. 햇살이 비친다.
따뜻함을 금방 느낀다. 눈이 많이 왔던 날 소나무들이 꺾어져 길을 막고 있었지.
나무들이 이젠 치워져서 원래 길이 만들어져 있다. 그날 눈에 빠져 길이 막혀 있을 때
길이 아닌 길로 겨우 산을 올랐지. 역시 겨울엔 남쪽 산등성이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 좋아.
햇살이 나를 따뜻하게 해 주니까. 태양이 없다면 어떻게 살아갈까?
인류 역사의 대부분은 추운 빙하기였다는데 그래도 그 시기를 잘 견뎌온 인류는
지금 또다시 위기를 겪고 있긴 하지.
지구 온난화! 온난화로 인해 다시 빙하기가 오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고 하는데….
태양이 비치니 걷기가 한결 수월 하다.
“ 조심하세요”
갑자기 어느 부부가 바위 비탈길을 내려오다가 남자가 미끄러져 넘어졌다.
바위 비탈길에서는 긴장을 해야지 하고 올라간다. 올라가는 것이 오히려 넘어지기는 쉽지 않아.
내려갈 때 조심해야 돼. 무게중심이 내려갈 때는 몸이 뒤로 처지기 때문에 미끄러지기 쉽지.
몇 사람이 지나갔어. 여긴 소나무가 많은 곳이야. 소나무의 향기가 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어.
피톤치드인 테르피넨(terpenes) 향기가 내 몸을 감싸고 있었어.
이것이 내 머릿속에 잡념을 날려 버리고 상상의 비행 공간을 마련해 주는 거야.
해가 쨍하고 나를 비추었어. 나의 무릎 연골이 부드러워졌나 봐.
계단을 오를 때 그리 통증으로 느끼지 않았어. 태양! 고마운 태양! 우리 태양!
우리 삶을 부드럽게 해주고 있어. 너무 뜨거울 때가 문제지.
겨울에도 태양은 우리를 녹여내고 있는 거야. 나의 가슴과 손과 발을 부드럽게 해주고 있어.
너무 부드러워지면 달콤한 잠을 자게 되는 거야. 이것이 태양의 효과지. 아기들도 쑥쑥 잘 자라는 거야.
식물은 물론이지. 탄소 동화작용. 이것이 없다면 생명체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따뜻해졌어. 겨울에 나한테 오는 햇빛은 축복이야.
너무나 깨끗한 산 공기 속에서 투명한 나무들 사이 속에서 나는 명쾌한 몸과 영혼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왼쪽 언덕길로 올라갔어. 계단이고 경사가 심했지.
내가 오르는 길 왼쪽에 나무들이 빽빽하게 서 있었어. 몇 년 전 자그마한 나무들이었는데
이제는 울창한 숲을 이루었어. 가다가 큰 바위 언덕이 나오지. 거기선 조심해야 돼.
여러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어.
따뜻한 남쪽 산등성이에서 걷는 것은 너무 좋아. 좋지.
겨울엔 남쪽 산을 다녀야 돼. 물론이야 찬공기를 그대로 마시지만 그 안에 햇살의 파장과 입자들이
코로 들어가지. 그 바위 언덕을 지나 경사진 내리막 길로 가지 않고 그냥 쭉 평탄한 길을 걷기로 했어.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잖아. 태양빛으로 나의 무릎이 물렁해졌지만 무리할 필요 없었어.
저 멀리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어. 오랜만에 산에서 보는 바다.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오니 바람이 불기 시작했어. 시원한 바닷바람,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바닷바람이었어.
거기서 잠시 쉬었다가 바다 한번 그리고 내려가야지. 바다를 한참 쳐다 보고 바람을 맞고 있었어.
그림을 그릴려니 바람이 추웠어 그래서 나는 스틱을 내려놓고 잠시 쉬었다가 그냥 내려가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지.
걸은지 1시간이 넘었어. 왔던 길로 되돌아가고 있어.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햇빛을 받으며 걸어가고 있었지.
왼쪽이 따뜻했었는데 오른쪽이 따뜻한 거야. 아직도 참나무들의 단풍이 떨어지고 있어.
여름이 길었기에 지금도 떨어지는 거지. 나는 바위 언덕에서 조심조심 내려왔어.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태양이 더 따뜻한 것 같다고 할까. 잎이 다 떨어진 숲 속을 바라보며 나목이 된 나무들을 바라보며 걸어가고 있었지.
우리도 나목처럼 저렇게 벗고 살 때가 있었는데 어느 날 감추지 않으면 안 됐지.
나목을 보면 부러운 거지. 빛을 따뜻하게 받는 남쪽 산등성이에서 태양을 바라보는 인간들,
인간들은 태양을 쫓아갈 수 있지만 나무들은 주어진 시간에만 태양을 볼 수 있구나.
저 북쪽의 나무는 겨울에 추위를 탈 거야.
봄, 여름이 되어야 긴 햇살 속에서 북쪽에 나무들은 살아나 원기를 되찾겠지.
서해 바다를 보고 있었다. 바람이 분다 나뭇잎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상록수와 아직 떨어지지 않은 단풍들.
나무들의 목소리와 바람은 태양빛 온기를 나무 사이로 전달해 주고 있었다.
태양과 함께하는 겨울 산행, 언제 또 눈이 올지 모르지만 겨울에 볼 수 있는
태양과 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마친다.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