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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그림을 그린 지 2주일 째이다.
8장을 그렸다.
어제는 나비를 그렸다.
봄이 그리운 걸까? 아직 겨울의 초반인데...
남아메리카의 나비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비다.
도서관에서 잡지를 보다가 나비를 모아놓은 사진을 보았다.
여러 모양의 나비, 나비의 테두리는 비슷하나 그 날개의 색이 다양하다.
연필로 그리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 같았다. 연필로는 명암의 조절 밖에는 할 수 없지 않은가?
색조를 나타낼 수 없으니 말이다. 흑백 영화나 다름없다.
가끔은 colorful 한 세계보다 흑백의 세계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복잡한 수많은 색의 혼돈에서 벗어나 단조롭고 은은하며 두 가지 톤의 색으로
세계를 표현해 보는 것. 얼마나 단순하고 명쾌한가?
그 속에서 풍부한 상상의 세계를 그려볼 수 있다.
간단하고 명료한 세계 그리고 명암에서 퍼져 나오는 거리와 입체의 느낌.
그것이 간결한 삶을 보여준다.
연필심을 바꿔야겠다. 너무 연한 심이어서 진하게 그리고 나면 손이나 어떤 물건에 닿을 때 퍼진다.
그림의 형태가 문드러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비는 나에게 무슨 영감을 준 것일까?
봄? 여름? 따뜻함?
그렇다. 겨울에 느끼는 나비의 모습은 현란한 생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참 활기 있는 나비의 팔랑거림, 가볍게 나무나 꽃 위에 착륙하여 무엇인가 입으로 먹는 모습,
꽃과 나무의 생명을 옮기는 나비의 비상은 우리에게 생명의 신비함을
식물의 생명을, 더 나아가 동물들의 삶을 갖게 하는 원초적 움직임이다.
봄에 나는 나비의 팔랑 거림을 종종 본다. 좌우로 상하로 지그재그로 혼란스러우리 만큼 움직이는
나비의 비상은 우리의 눈을 잠시도 한 곳에 머무를 수 없게 만든다.
나는 나비 속에서 삶이 유영하는 것을 본다.
공간을 시간을 유영하는 우리.
언젠가 우리도 나비처럼 저렇게 현란하게 살아가겠지 현란하게...
태초에 마음이 있었으니 언젠가는 현란하게, 언젠가는 침묵으로
언젠가는 갈등으로, 언젠가는 욕망으로... 살아가는 현세를
나비는 초월하고 있다.
생명을 옮겨주고 자기는 없어진다.
인간의 삶과 다를게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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