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들이를 갔다.
봄비가 나리는날, 우산과 우비를 챙겨 베낭에 넣고 버스를 탔다.
인천터미널에서 2시간 좀더걸리는 거리를 900원짜리 시내버스를 타고 간다.
강화에 사는 아주머니를 만나 버스안에선 이얘기저얘기를 하며 가니 어느새 강화터미널이다.
여기서 강화관광지도를 얻고 나들길 안내 팜프렛도 얻었다.
인터넷신문에서 본것보다 더 자세한 내용이 맘에 쏙 든다. 지도에 표시된 나들길을 보며
우리네명의 나그네는 제 1코스를 택했다. 강화 터미널에서 갑곶돈대 까지 18Km이다. 6시간이걸린다.
우린 6시간은 너무 길고 중간에 빠지자고 했다. 우리는 연미정에서 갑곶돈대까지 가는 해안도로를 걷지 않고 장수를 거쳐
다시 동문쪽으로와서 터미널로 오는길로 잡았다.
남문을 거쳐 동문으로가니 벌써 12시가 다되었다. 출출한시간 이다. 베낭에 넣고온 간식으로 점심을 대신하기로 하고
걷기가 끝날때 저녁으로 마무리하자고 하며 우리는 용흥궁에 다다른다. 용흥궁은 강화도령 철종이 임금이되기전 거처했던곳으로
입구에 쓰인 현판은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라고 관리인(여성) 이 설명해준다. 철종의 잠저(潛邸)에는 비와 비각만 있다. 철종이 살던 집은 초라한 초가집이었다한다.
철종의 잠저터 위쪽으로 계단을 오르니 우리나라 최초의 성공회 성당이 자리잡고있었다. 성공회는 루터의 종교개혁이 시작된이후 영국에서 시작된 개신교의 하나.
좀 의아 했다. 한나라의 왕이 살았던 터 위쪽에 외국의 교회가 자리했을까? 대한제국시대의 국정이 혼란했던 탓일까?
성공회 성당보다 조선시대 왕의 잠저자리가 아래쪽에 위치한 데다가 더초라해보이는것이 그리 기분이 좋지는 않네요.
역사공부를 하게되는 나들이.
우리는 몽골 항쟁 39년의 역사가 담긴 고려궁지쪽로 갔다. 이때 비가내린다.
이 궁지도 임시로 쓰였다가 개성으로 환도할때 몽골의 요구로 궁건물을 없애버렸다 한다.
우산을 쓰고 우비를 입고 우린 680년이나된 은행나무를 보며 감탄한다. 잘자란나무다.
위쪽을 바라다보니 포장된 언덕길이다. 왕벗꽃나무가 하늘을 막고 서있고 나무냄새가나는 그길을 걸어 올라가니 북문이 나온다.
참걷기 좋은 산책로다. 북문은 진송루라고 써있다. 강화산성은 몽고의 침입으로 고려가 수도를 옮기면서 쌓았다 한다. 산성에는 동,서,남,북문이 있다.
그문을 빠져나오면 오솔길이 나오는데 중앙에 보도블럭을 깔아놓았다. 나무와 숲이 우거져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걸어가니 오읍약수터가 나온다. 五泣의 유래는 잘모르겠다. 그곳에 유래의 설명이 없다.
아마 누군가 다섯번을 소리없이 울었는가? 그눈물한번 많이나오네...참시원하고 물이 달다.
우린 물병에다 오읍약수를 갈아넣었다. 나들이를 끝내고 식당아주머니도 주고 아내에게도 갖다주었다.
수돗물을 거른 정수물 보다야 맛이 좋은건 확실하다.
우린 거기서 과일을 먹는다. 오선배님이 가져온 태국제 망고와 여러가지 과일 말린것.
그걸먹으니 힘이솟는다.
자 ! 또 갑시다. 우린 일어선다.
아름다운 숲속을 걷는 기분은 정말 좋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숲속길은 정말 우리의 몸과 마음을 맑게해준다.
가다가 왕두꺼비도 만나고, 싱아도 보고 아기똥풀꽃도 보고... 싱그러운 숲속을 조금 더 내려가니 샘물터가 나온다.
옛날 아낙네들이 모여 빨래를 하던곳이다.
빨래를 할 수 있는 곳이 여섯개다. 한쪽에서 물이 샘솟고...
샘물터앞에 이런 글이 써있다.
" 송학골 샘물 "
나는 태초 이래로 물이었나니
숱한 가뭄에도 송학골 대산리 들판의 목마름을 채워 땅을 풍요롭게 하였노라.
세월 흘러 쉼터로 때론 마을 아낙네들의 수다공간으로 빨래터로 내몸 내어 맞이 하였노라.
이제 새로 단장하고 강화 나들길 도류(島流)들 맞이하노니 부디 눈길 주고 따스한몸 한번 더 만져주기 바라노라.
그리하여 그대들의 지친 몸뚱이 한결 가벼워진다면 내 다시 몸 내어준 "느림 "의 미학이 크게 길할것이다.
숲속을 나오니 논이 훤하게 바라다 보이는 논길이다. 우산을 들고 우비를 입고 빗길을 걷는다.
마을을 빠져나오면 우측으로 가는 대로가나온다 조금올라가니 대월초등학교가 보인다. 우린 그길을 따라 계속걸어가다가 좌측으로 꼬부라진다.
한참을 가다보니 장무공 황형장군 유적지 간판이보인다. 잠시 그곳에 들어 황형장군의 공적을 읽었다.
중종때 절도사를 세번이나 지낸분으로서 나라를 지키는데 많은공을 세운분이다. 중종이 연미정 일대의 넓은 땅을 하사했다 한다.
관직을 떠나서도 훗날 나라를 위해 쓰일 소나무를 이일대에 많이 심었는데 그가 죽고 70년후 그소나무가 임진왜란때 의병장 김천일이
黃公先見이라 감탄하며 병력을 이동시킬 배를 만들기위해 긴요하게 쓰였다고 한다.
황형장군 유적지를 보고 나오면 연미정까지 가는길도 아름답다. 가다가 인삼밭을 보고, 논에선 이앙기가 모를 심는 모습, 백로떼가 날아가는 모습
예쁜 마을길,,,, 마을회관을 지나 월곶동에 이르면 처음보는 나무들을 심어놓은 수목원을 볼 수 있다. 나무이름을 돌에가 새겨놓은것이 기억에 남는다.
연미정까지 가는 길은 길다. 5Km이다. 저멀리 돈대 같은 것이 보인다. 연미정이다. "저기 보이는게 연미정같군"
우리는 그래도 여유있게 걸어간다 바람없이 내리는 비를 맞는 기분 또한 좋다. 연미정에 이르니 바다를 볼 수 있다.
북쪽으론 개풍군이보이고
동쪽으론 김포.. 연미정에서 바다바람을 쏘이며 정자를 둘러본다.
연미정이라 그런가 제비들이 연미정(燕尾亭)주위를 날쌔게 날아다닌다.
연미정앞에는 황형장군의 집터비가 보인다. 연미정은 자연경관을 보며 풍류를 즐기거나 학문을 공부하던 정자이다.
한강과 임진강의 합해진 물줄기가 하나는 서해로, 또 하나는 강화해협으로 흐르는데,
이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고 해서 정자 이름을 연미정이라 지었다고 한다.
언제 처음 지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나 고려 고종(재위 1213∼1259)이 사립교육기관인 구재(九齋)의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놓고
공부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다.
또한 조선 중종 5년(1510) 삼포왜란 때 큰 공을 세운 황형에게 이 정자를 주었다고 한다.
인조 5년(1627) 정묘호란 때에는 강화조약을 체결했던 곳이기도 하다.
연미정을 나오니 길이 두갈래다. 하나는 해안가를 따라 갑곶돈대까지 가는 정코스, 그길로 가면 앞으로도 약 5Km를 더걸어야한다.
지금까지 걸린시간이 4시간, 11시반에 출발하여 지금 3시 반이다. 갑곶돈대까지는 1시간에서 2시간정도 걸릴것같다.
우리는 배도 출출해오고 다리도 아파오고 ... 그곳에서 17번 도로를 따라 강화읍까지 가로질러 가기로 한다.
"가다가 버스가 오면 타고 가자구"
계속 걷는다. 비도 계속온다. 그래도 좋다 . 가랑비를 맞으며 저멀리 바다를 보며 포장도로를 걷는 맛도 멋있다.
연미정쪽으로 버스가 가고있다. 가다보니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10번 버스다. 우리는 정류장에서 쉬기로 했다.
이때 이선배님가방에서 떡이 나온다.냉동고에 있던 떡!
"시간이 없어 녹이지도 못하고 그냥가져왔어"
배가 출출하니 좀 딱딱한 떡도 꿀맛이다. 두개를 먹고나니 허기를 면한것 같다. " 아이고 맛있네...~"
잠시 쉬고 있는데 버스가 연미정쪽 에서 버스가 오고 있다.
" 저거 타자구, 앞으로도 한참 걸어야 할것 같은데 ..."
잠시 가다가 창밖을 보니 점심때 보았던 동문이 보이질 않는가!
으흑! 이거 다와서 탄거 아냐?
"아이고! 버스 안탔으면 다리 부러질 뻔했네여....! "
버스안에서 식당을 찾으니 버스 기사님이 강화 풍물시장을 안내한다.
시장 건물 2층은 식당가이다. 강화 인삼막걸리한잔을 하며
밴댕이회 무침에 밥을 비벼 맛있게 먹다가 출발지점인 버스터미널까지 거의 다와서 버스를 탄것이
우습기만하다.
" 버스 안탔으면 다리 부러질 뻔했어요! ㅎㅎㅎ "
역사공부를 하게한 즐거운 나들이였다.
끝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