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비가 왔다. 오전에 파란 하늘과 흰구름이 보였는데 오후가 되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좀 바빴다. 오전 산책을 못 했다. 아내와 시내 볼일 있어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니 세시가 좀 넘었다. 오늘 산책을 해야지? 나는 우산을 들고 나의 길로 나갔다. 산책 길의 낙엽들은 모두 젖어 있었다. 아직도 은행 잎들이 떨어지고 있다. 생각보다 꽤 비가 많이 내린다.
비오는 날의 걷기는 빗소리가 전부다. 우산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낙엽을 두드리는 빗소리, 나무에 부딪치는 빗소리, 빗소리가 나의 머리를 때린다. 차분해 지는 빗소리, 나의 산책 길은 아무도 없다. 나는 빗소리와 낙엽과 나무들과 회색빛 하늘을 친구 삼아 걷고 있다. 오늘은 토요일이기에 좀 긴 거리를 걸으려고 했었다. 오랜만에 작은 숲속 길로 들어섰다. 언덕을 올라 오느라 좀 힘이 드는데, 여기서부턴 평지가 나온다. 회색빛 하늘 아래 놓여있는 나무들이 비를 막고 서있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나뭇잎들. 이제 겨울이 닥치겠지. 나무들은 벌거벗고 있다. 그러나 내 피를 입을 것이다. 우리들은 겨울이 되면 겉옷을 입는다. 추위를 막으려고 나무와 달리 겉옷을 입는다. 비와 함께 낙엽들이 떨어지고 있다. 이별 하고 있다. 이제 우리에겐 열이 필요하다. 추위를 막을 온기가 필요하다. 걸으면서 만들어야지. 겨울에도 지금 만큼 걷는거야. 한참을 가니 비가 좀 잦아 들었다. 우산을 접어도 될 만큼 빗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난 우산을 접는다. 걷는 게 한결 편하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조용한 물방울 소리. 빗소리 들은 나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준다. 토요일 오후 맑은 날이면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산길. 오늘은 아무도 없다. 빗소리와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와 나만이 고요한 고독을 지킨다. 저 앞에 두 사람이 보인다. 비는 그쳤는데 우산을 쓰고 간다. 그들도 말이 없다. 고요를 즐기는 것이다. 그들이 지나가고 다시 아무도 안 보인다. 산 정상 근처에는 물 안개가 보인다. 포근한 날씨에 증발 된 수증기. 새들도 비를 맞으며 생기가 도는 모양이다. 짹짹이며 지저귄다 . 다시 나만의 고요한 길을 걷고 있다. 사람들은 비 오는 날에 산행을 그리 즐기지 않는 것 같다. 비오는 날은 그날 대로 색다른 매력이 있는데...
내가 제일 잘 쉬는 곳까지 왔지만 오늘 나는 앉을 깔판을 안가져 왔다. 그냥 우산만 들고 나왔다. 앉을 수가 없다. 나는 계속 걷는다. 언덕으로 올라간다. 정자가 있는 곳이 있다. 아니, 정자라기 보다는 휴게터. 비를 가려 주는 지붕이 있고 벤치가 있다. 난 그곳에 앉아 잠시 쉬다가 내려갈 참이다. 이 계곡이 너무 조용하다. 나는 벤치 앉아 빗소리를 감상하고 내려 가련다 . 빗소리,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 비 오는 날의 산책은 자연속에 내가 몰입하는 좋은 시간이다. 모든 잡념을 버리고 안개와 비와 나무와 낙엽과 산과 하나가 되는 시간이다.